친구랑 싸웠다. 유치하고 부끄러운 표현이지만 그랬다.
마음 맞는 몇 안되는 친구들 중에서 가장 소중한 친구였는데
요즘은 하루가 멀다 하고 둘이 무슨 불만과 쌓인 감정들이 있는지
사사건건 부딪혔다하면 의가 상한다.
며칠 전엔 일주일이 넘게 자기식대로 찬바람이 쌩쌩 불고 어찌나 차갑게 굴던지
흐렸다 싶음 또 개었다가 도무지 갈피를 잡지 못해서
참다못해 내가 먼저 크게 한 건 터뜨렸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니? 나한테 도대체 왜 그러는데?”
친구는 처음엔 뭔소린가 싶은 눈치였다. 그도 그런 게 참다가 참다가 앞 뒤 다 짤라 먹고
저 말부터 했으니 황당하긴 진짜 황당했을 것이다.
“뭔 소리야? 자초지종을 설명해봐.”
“됐고, 다 때려치우자.”
“......”
“......”
“그래. 다 때려치워라.”
역시 내 친구. 강한 녀석이다.
좀 숙이고 들어와 주길 바란 건 나의 큰 희망과 욕심이었나보다.
이어 친구의 그 한마디가 나의 뒷통수를 후려갈겼다.
“근데 한마디만 해도 되니?”
“.....”
“네가 얘기하던 사랑이 고작 이런거야?”
나는 할 말이 없었다. 맨날 친구야 사랑한다 라고 얘기하며
끝까지 함께 하자던 우정은 지금 우리 사이에선 코딱지만큼도 없어보였다.
좋을 때나 사랑이지 쌈닭도 이런 쌈닭들이 없다.
언제, 어디서부터, 왜 성질이 고약해지기 시작했는지는 몰라도
아니면 원래의 본성이 이제 밖으로 드러나는건지는 몰라도 왜 항상 이 모양인지 모르겠다.
친구도 나도 이젠 서로가 너무 편해져서 그런지 끝장 다 본 사이처럼
맨날 으르렁거린다.
아니, 솔직히 지랄은 같이 해도 염병은 항상 내 몫이다.
완전한 사랑? 그리스도적인 사랑은 무슨....
그걸 내가 무슨 재간으로 할 수 있겠나.
말로만 뻔지르르하게 이웃 사랑 해야한다고 가식적인 신앙 생활을 하고 있지만
이렇게 한판 붙었다하면 그놈의 사랑은 어디로 갔는지
이젠 아주 안 볼 사이처럼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
상처도 그냥 주는 것도 아니다.
예전 상처 들쑤시고, 아물지도 않은 상처 꼬집고, 상처난 데 소금 뿌리고.
어떨 땐 잘못은 지가 해놓고 상처는 내가 받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따지고 보면 내 잘못이었다.
자기애가 크기 때문에 상처 받기 싫어서 먼저 상처를 주나 보다.
자기 방어 본능이란 게 그래서 무서운거다.
사랑한다지만 나를 죽이고 상대방을 먼저 사랑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죽겠는데, 내가 살아야 하는데 친구를 나보다 더 사랑하기엔 아직 내가 크다.
나는 작아져야 하고 그분은 커지셔야 하는데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다.
결국 감정과 감정 사이에서 나는 고작 나약하고 부족한 한 인간일뿐이었다.
그러면서 스스로 한탄 내지는 위로를 하고 있는데 문자가 왔다. 미안하다고...
진심인건지 의무감에서 하는 말인지 혼란스러우면서 짜증이 밀려왔다.
독하게 나갔으면 끝까지 독하게 나가야지 왜 사람 창피하고 미안하고 후회하게 만드는건지...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냉랭하다.
여전히 나는 내 서운함만 얘기하고 친구는 친구 서운한 것만 얘기한다.
서로가 더 이해받길 원하고 더 인정받기를 원하고 있었다.
상대방을 더 이해하려고 하지 못했다.
정말 노래 가사처럼 사랑한단 말로는 사랑할 순 없나 보다.
말로만 사랑할 수 있다면,
온갖 미사여구를 붙여가며 사랑한다고 구구절절 얘기 하는 것이 사랑하는 것이라면
난 이 세상에서 최고로 잘 할 자신이 있는데 말이다.
하지만 사랑에는 행동과 책임이 뒤따르는 법이라 녹록치 못하다.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는 것쯤은 나도 안다.
하지만 그 적당한 거리가 유지만 될 것 같은 두려움이 엄습해온다.
거리만 유지하다, 벽을 쌓다가, 나중엔 그냥 아는 사이로,
그러다 가끔 마주치면 서먹하게 안부나 묻는,
그러면서 차츰 기억에서 잊혀져가는 그런 사이가 될 것 같은 두려움.
지금은 이대로 흘러가지만 이 시간이 지나면
더욱 돈독해진 우정을 나눌 수 있는 사이가 되어있기를 바라본다.
나무가 폭풍우와 뜨거운 태양과 바람에서 더욱 깊이 뿌리내리는 것처럼,
그리하여 나중에 어떤 환경이 닥쳐와도 꿋꿋하게 서 있을 수 있는 것처럼.
가볍고 단순하게, 낮고 약하게,
어떤 갈등속에서도 믿고 의지하는 그런 사이.
친구야...
내가 입버릇처럼 얘기했었지.
서로에게 상처가 되더라도 항상 솔직해지자고.
그런데 우리 참 서로에게 너무 솔직해서 상처 많이 줬어.
그래도 고마웠다. 많이 솔직해서. 100%는 아니었지만.
너 정말 믿고 이해하고 의지했어.
그래서 솔직해도 나한테 상처이더라도 너의 이런 저런 그런 얘기 듣고도 그냥 웃고 넘어갔어.
그런데 넌 왜 그래. 내가 너 못 믿어서, 사랑하지 않아서
그런 소리 한 게 아니라는 거 잘 알잖아.
그래....내가 많이 교만했어. 내가 뭘 어떻게 하던 네가 다 받아줄거라고 자신했나봐.
너도 힘들었을텐데 내가 도움이 못되고 내 멋대로 성질부려서 미안해.
정 떨어지게 해서 미안해. 항상 반복되는 잘못해서 미안해. 말로만 사랑해서 미안해.
못돼 처먹어서 미안해. 특히 문자로 욕까지 보내서 억수로 미안하다.
일주일동안 네 앞에서 침묵했으면 벌은 받을 만큼 충분히 받았다고 생각해.
먼저 전화 좀 걸어주렴. 나 피 말려서 아예 죽일셈이니?
네가 먼저 손 내밀어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거 잘 알잖아.
그리고 이거 하나만 알아줘. 나 여전히 너 믿어. 그리고 사랑한다.
부족한 사랑해도, 말로만 사랑해도, 내 식대로 사랑해도 그래도 사랑한다.
두고봐라. 끝까지 사랑할거다.
내가 너한테 지은 죄가 많아서 미안해서라도 그럴거야.
어떻게해서라도 우리 서로 끝까지 손 놓지 말자.
루시아 자매님!ㅎㅎ
어제 잠깐 인사만 나누고 왔네요.
정말 반가웠어요.ㅎㅎ
글 읽고 그런 친구가 있는 자매님이 참 많이 부러워지네요.
저는 매번 학교를 진학할때마다 도시가 달라져 친구의 비중또한 많이 얕았던것 같아요.
그러다 아이엄마가 되어 알게된 친구가 있는데, 어쩌면 그친구와 다 털고 싸워본적은 없지만
서운한 마음 속상한 마음때문에 한 달정도 연락않고 지냈던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정말 너무너무 서운해 미운기억만 남을줄 알았는데 고마웠던 기억이 어느덧 제 마음속을
온통 지배하고 있더군요. 아마도 그 친구 마음에 루시아자매님의 진정이 어느날 느껴질거라 믿어요.
한 평생 살면서 자매지간에도 그렇게 다 속털어놓고 지내기 쉽지않은데 어린시절처럼 그렇게 지낼수
있는 친구 그렇게 싸울수 있는 친구가 있는 자매님 정말 부럽습니다 ㅎㅎ
힘내시고 이 행복한 계절에 먼저 커피한 잔하자고 전화해 보세요. 그럼 다 눈녹듯 녹지않을까
싶네요. 행여 제가 잘 모르고하는 얘기라면 용서(?)하세요ㅋ
친구와 예전보다 더 돈독한 사이가 되어 더더욱 행복한 한 주 되시길 기원할께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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