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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재권 요셉, 회장 (韓재권, HAN TJAE-KOUEN JOSEPH, 1835-1866) 참수
한재권 요셉은 충청도 진잠에서 독실한 신자인 한언적 도미니꼬와 모친 성주 배씨의 아들로 태어났다.
온순한 성격과 굳은 신앙을 지녔던 그는 서 막달레나와 혼인하였으나 슬하에 자식이 없었다.
충청도 진잠에서 박해가 일어나자, 그의 부친이 전라도 고산 다리실로 피신했고, 그후 그는 가족을 이끌고 대성동 신리 마을에서 살았다.
한 요셉은 진잠에서 회장으로 활동했으나, 이곳의 회장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을 사람들은 모두 그를 "회장님"이라고 불렀으며, 그의 근실함과 착한 성품을 칭송하였다.
1866년 12월 3일 저녁, 포졸들이 그의 집을 들이닥쳤을 때에 그는 장작을 패고 있었기에 포졸들에게 쉽게 체포되었다. 한 요셉은 다른 신자들과 함께 전주 포도청으로 이송되어 감옥에 갇혔다.
그는 옥중에 여러 가지 심문과 고문보다는 가족의 구명운동과 배교 강요 때문에 심한 번민을 하였으나, 끝내는 순교의 월계관을 받아 쓰게 되었던 것이다.
그는 1866년 12월 13일, 전주 숲정이에서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오니, 그의 나이 31세였다.
 
 

 

 

 

 

 

 

 

 

 

 

 

 
정원지 베드로, 농업(鄭원지, TJENG OUEN-TJI PETRUS, 1845-1866)참수

정원지 베드로는 충청도 진잠의 어느 열심한 신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친은 일찍이 순교하였음으로, 그는 늙은 어머니를 모시고 고향을 떠나 처음에는 전주 지방 양량 수널마루에서 살다가, 다시 금구 지방으로 이사하였으며, 체포되어 얼마 전에는 성지동 마을로 와서 조 베드로의 집에서 셋방살이를 하였다.
그는 여기서 결혼하여 형과 한집에서 근근히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는 대단히 열심하고 또 지극히 착실한 신자였기 때문에 조 베드로는 이 젊은이를 성의껏 지도해 주었던 것이다.
1866년 12월 3일, 전라감사가 보낸 포교와 포졸들이 성지동을 습격하자, 정 베드로는 마을을 몰래 빠져나와 산에서 하룻밤을 꼬박 세운 뒤에 마을 일이 궁금하여 발몬이라는 마을 뒷산마루 아래만 살피면서 정신없이 내려오다가 산마루로 오르던 포졸과 정면으로 마주쳐 꼼짝없이 체포되었다.
그는 조 베드로 일행과 구진퍼리에서 하룻밤을 지낸 뒤 전주로 이송되어 심문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는 효성이 지극하였기에 노모를 생각하다가 처음에는 신자임을 부인하였으나, 조 베드로 등의 위로와 격려로 마음을 가라앉히면서 교우임을 똑똑히 밝히게 되었다.
감사 앞에 끌려가 교리를 가르쳐 준 선생들을 대라고 하자 그는 유일한 스승은 천주교를 믿다가 이미 돌아가신 자기 아버지 한 분뿐임을 확실히 밝혔다.
자기 아버지가 이 교를 신봉하다가 죽었는데도 같은 교를 믿는다고 해서 놀라는 포졸들에게 그는 "나는 내 아버지와 내 어머니를 만나 뵙기 위해서라도 성교를 충실히 따를 것입니다"라고 자신 있게 말하였던 것이다.
그후 그는 옥에서 자기 아내에게 이렇게 전하였다. "나의 죽음을 슬퍼하지 마시오. 천국에서 우리가 서로 만날 때가 오리니 그늘을 기다립시다." 갇힌 지 9일이 지난 12월 13일, 정 베드로는 다른 신자들과 함께 전주 숲정이 형장으로 끌려갔다.
형집행을 위해 모든 준비를 서두르고 있는 동안 포청의 관리 하나가 술에 취하여 죄수들을 희롱하며 "죽어 천당은 무슨 놈의 천당이냐?"고 하며 하늘을 향해 욕을 퍼부었다. 이때 그는 머리를 번쩍 들고 "몰상식한 놈 같으니, 그래 너는 네 아버니, 네 어머니를 저주하느냐?"고 소리를 지르고는 다시 머리를 숙인 채 조용히 앉아 있었다고 한다.
그는 스물 한 살의 젊디 젊은 나이로 참수치명한 것이다.